아들에게 손편지 쓸 때 참고할 문장과 문구

하나뿐인 두 살 아들에게 보내는 아빠의 편지

사랑하는 해든이에게.

어스름 속 행복한 꿈을 꾸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살며시 방문을 닫고 나왔어. 주섬주섬 오늘도 어제 입은 자주색 양말과 남색 잠옷을 챙겨 입어. 날씨가 더 추워지면 양말을 두 겹 신어볼 생각이야. 컵에 따듯한 물을 받는 동안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로 눈곱을 떼. 컴컴한 작은 방의 불을 켜면 그제서야 생각들이 물밀듯 찾아오고,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해진 마음을 안고 의자에 앉아.

하마들이 뛰노는 샛노란 내복을 입고 연보라색 하마 베개를 끌어안은 너의 모습을 떠올려. 편지를 쓰는 동안 하늘은 천천히 밝아지고 있어.

편지 쓰는 일은 행복한 일이라 생각해. 누군가의 의미를 떠올리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조용히 그리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기 때문이겠지. 아빠는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단다. 엄마를 만나 사랑하는 일을 배우고, 너를 만나 누군가를 위하는 법을 배웠어. 그리고 배움의 과정은 늘 아름다웠지. 그렇게 만든 우리의 삶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좋았고.

아빠는 무언가를 명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려 해. 그래야 네게 이 마음을 더 잘 남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야. 개미들은 페로몬이라는 작은 물질로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를 아니? 아빠는 상상한단다. 개미처럼 생각을 그대로 전하는 물질이 있다면 좋겠다고 말야. 마음은 저만큼 가있는데, 고작 담아낸 건 형편없는 문장들 뿐이라니. 너를 생각하는 마음, 너를 떠올리는 느낌, 이 모든 걸 너에게 온전히 전해줄 수 있다면.

'키가 작은 풀들로 가득한 언덕엔 부드럽게 물든 노을이 깔리고, 상아색 기둥이 늘어선 저택 앞에서 일행들은 한 편의 이야기가 끝난 듯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눈다...'

어느 날은 화가를 동경했단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아름다운 어딘가를 너의 엄마에게 전해주고 싶었거든. 하지만 마음만 앞서서는 서툰 말과 더 엉망인 글솜씨로 죽도 떡도 아닌 무언가를 빚어버렸지. 결국 전해진 말은 아빠가 봐도 처참했단다. 그리고 못난 실력은 그림이라는 핑계로 이어졌어. '그림이라면 내 마음을 더 잘 담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림도 못 그리면서 말야. 마음은 보통 희뿌옇고 뭉실거리니 그림으로 그리면 또렷해질 것만 같았어.

집에 굴러다니는 수채화 물감으로 몇 번 끄적이기도 했어. 네가 찾아오기 전, 신혼여행에서 네 엄마와 함께 앉았던 푸른빛이 하얗게 부서지던 시간을 잊은 호숫가며, 네가 찾아온 뒤 떠난 여행에서 만난 이름 모를 천변 둑에 늘어선 네가 좋아하는 브로콜리를 닮은 분수들, 엄마 손을 잡고 조약돌 같은 맨발을 살며시 가져다 대보는 너의 모습. 어렵더라. 글로도 잘 표현하지 못하는데 그림은 오죽했겠니. 또렷은커녕 스케치북엔 다른 동네가 그려져 있더라구.

풋내 가득한 그림도 몇 장 그려보니 알게 된 거지. 글, 그림,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잘 표현할 수 있는지가 먼저였던거지. 마음은 언제나 준비완료였으니까. 하하.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찍어본 둘은 모양도 다르고 어울리는 이야기도 다르더라. 다행이야. 글부터 연습하고 그림에 어울리는 이야기는 마음속에 꼭꼭, 잠시 아껴두면 되니까. 더 어울리는 모습으로 너에게 전해 줄게.

편지를 쓰니 안방에서 곤히 자는 네 생각이 많이 나. 네가 자는 모습을 좀 더 바라보고 싶다. 나는 네게 이 마음을 잘 전하고 있는 걸까? 네 볼따구니에 찰싹 붙어 매일 사랑한다 말하고 종종 짧은 엽서도 썼지만, 그건 마치 레트로트 부대찌개 같은 느낌이야. 맛있지만 어디에서나 먹을 법한 대기업의 맛이라고 할까? 진부한 표현, 일상성과 반복에 조금은 빛이 바랜 마음의 껍질들. 때때로 네게 전해주고 싶은 건, 세상에서 하나뿐인 너와 너에 대한 하나뿐인 마음이니까. 그래서 이렇게 서툰 요리를 시작해.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첫 편지부터 머리털 빠진다는 말을 느끼는 중이야. 머리털도 가을걷이를 아는지 안 그래도 추욱 가라앉는 요즘인데, 마음을 그대로 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그렇지만 머리카락 몇 가닥에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다면 머리카락쯤이야. 나중에 아빠 머리가 조금 비어있어도 이해해줘야 해, 알았지? 너를 내 머릿속에 넣고 싶지만 넣어야 할 곳은 머리가 아닌 사랑하는 가슴이어야 할 테니까.

언젠가 글을 읽어 네게 쓴 편지를 보게 될 때, 한참 이전에 흘렀던 아빠의 시간과, 고민, 생각, 마음, 이것들이 네게 자그마한 의미를 남겼으면 좋겠다. 당연히 네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너와 함께 놀이터에서 뛰노는 시간 그 자체겠지만, 그다음으로 줄 수 있는 건 명료한 글로 남겨진 아빠의 마음이라 생각하니까. 아빠는 이런 삶을 살아왔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단다.

진부하지만 실력이 없어도 전해야 하니 적어봐.

많이 사랑하고 아낀단다.

24년 10월 16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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