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아빠.
지난 달인가, 난생처음 '건강보험자격득실확인서'라는 걸 뗄 일이 있었어요. 회사 다니는 직장가입자인지, 부양받는 직장피부양자인지, 둘 다 아닌 지역가입자인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건강보험 가입 이력이 적힌 서류더라고요. 1989-02-26으로 시작된 목록엔 직장피부양자와 지역세대원이 빼곡히 쌓여 있었어요. 꼭대기에 다 와서야 직장가입자 두 줄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죠.
푸른솔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저는 아빠가 그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한 줄 알았어요. 어디서 주워들은 아빠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다는 얘기와 잘 어울렸거든요. 그러다 IMF로 회사가 망해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게 된 거라 생각했죠. 웃기더라고요. 푸른솔이라는 회사는 있지도 않고, 수산시장에 간 시기 모두 틀렸으니까요. 저는 아빠에 대해 뭘 알고 있었던 걸까요? 동시에 묻고 싶었어요. 왜 한 번도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아빠의 시간과 아빠의 삶에 대해서요.
속이 비어도 넘어지지 않고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솟는다.
본인의 확고한 신념을 따라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과 소개 문구는 늘 비어있죠. 남에게 시시콜콜 알리고 싶지 않다나요. 반대로 아빠는 사진도 문구도 채워져 있어요. 노란 국화가 수북한 하트 모양의 조형물 사이로 엄마와 둘이 쪼그려 앉아 찍은 사진과 저 문장으로요. 대나무 얘기, 맞겠죠? 아빠는 언제나 '아빠' 같았어요. 혼자 짊어지고, 뭔 일 있어도 말도 안 하고, 혼자 끙끙 앓고. 저도 아빠 아들이니 종종 아빠 모습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래봐야 남는 반찬이 아까워 꾸역꾸역 먹는다거나, 택시 안 타려고 어떻게든 낑낑대며 짐을 들고 가는 정도지만요. 저번에 이모와 같이 밥을 먹다 이모가 그랬죠, 아빠가 혼자 어금니를 뺐다고요. 엄마는 미련스럽다고, 이빨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아주 자기와 싸워 이기려 한다 했죠. 그 자리에서야 웃어넘겼지만, 모르겠어요. 그래도 반은 엄마 피가 섞였으니 혼자 이빨을 빼진 않겠죠. 그런데 왜 그렇게 아빠가 미련스럽게 자기를 이기려 들었는지 이젠 알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는 몰랐어요. 숙현이를 만나고 해든이가 찾아오고. 누군가를 향한 삶, 함께라는 기쁨… 아빠가 물려준 작지만 단단한 땅 위에 수수깡을 하나씩 심어보네요. 오밀조밀 엮은 가지마다 정든 손길이 물들어요. 삐뚤빼뚤하던 울타리도 어느새 퍽 둥글어졌죠. '우리 가족'이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고 어떻게든 지키고 싶은 집을 만나요. 아빠도 이렇게 많이 행복하셨겠죠? 그런데 정말 바보 같은 게 뭐냐면요, 앞날만 걱정하는 제 모습이에요. 행여 비바람에 울타리가 무너지지 않을까. 알맞게 데워진 우유를 닮은 행복이 두 손 가득 담겨 있는데, 멀리 보이지 않는 폭풍만 생각해요. 불안한 마음은 어디다 말도 못 해요. 봄 햇살을 한껏 머금은 새하얀 이불 같은 숙현이와 해든이에게 어떻게 말하겠어요. 나라도, 뭐라도 해야겠다는 조급함만 머릿속에 차요. 돈이 있으면 울타리가 튼튼해질 것 같아 시키지도 않은 궁상을 떨어봐요. 아빠를 따라 [조발 - 9,000원]이 적힌 동네 이발관에서 머리를 자르고, 편의점 마감할인 상품을 찾아다니며 저녁을 먹어요. 일을 마친 어느 저녁, 10분을 고민해 고른 200원 싼 삼각김밥을 씹다 창에 비친 어둑한 거리를 봐요. 이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고. 괜히 혼자 유난인 건지. 길게 늘어선 빨간 미등을 따라 마음이 일렁여요. 그럴 때면 아빠 생각이 나요.
수산시장에서 배운 일로 가게를 내려다 잘 안되고 아빠는 어찌저찌 서울대입구역 앞에서 편의점을 하게 됐어요. 20층 정도 되는 오피스텔의 상가 구석자리였어요. 1층이라 하긴 애매한, 어깨만치 오는 계단을 올라가야 가게 문이 나왔죠. 10평이나 됐을까요, 푸르스레 빛나던 청색 바이더웨이 간판을 기억해요. 주간 일을 마치고 집에서 저녁을 먹던 아빠에게 전화가 와요. 야간 아르바이트가 펑크나 가게 볼 사람이 없다는 얘기였죠. 걸어놨던 잠바를 다시 입고 현관문 너머로 멀어지는 아빠를 봐요. 아빠는 다음 날 저녁에야 집에 들어왔어요. 가게 유리문 틈으로 끝없이 새어 들어오는 외풍과, 동이 트려면 한참 남은 한겨울의 밤거리, 교대해 줄 사람이 없어 가게 문을 잠그고 급하게 뛰어간 화장실 변기의 깨질듯한 차가움, 흐무러진 폐기 샌드위치로 대충 때운 끼니, 30시간째 깨어있는 탓에 온몸을 짓누르는 눈꺼풀… 이제야 텅 비어있는 아빠의 시간을 그려보네요.
미끄러지듯 남부순환로 고가를 내려가던 택시 안을 기억해요. 엄마와 사당역 대항병원에 아빠의 정밀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는 길이었죠. 그렇게 아빠는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어요. 불규칙한 수면패턴, 좋을 리 없는 식습관, 10평도 안 되는 생활반경. 이상할 게 없는 병명이었죠. 벌써 10년도 더 됐네요. 국립암센터에서 치료받을 때도 똑같았어요. 제가 몇 번이나 찾아갔나요. 몇 시간씩 병실 복도를 걷고 그것도 모자라 링거 폴대를 끌고 병원 뒷산 둘레길을 오르던, 텅 비어 가는 아빠의 몸과 시간 속에 저는 없었죠.
차갑게 식어버린 돌덩이를 가슴에 담아요. 그 많던 밤 중 한 번이라도 제가 교대하러 오는 기대를 하셨을까 봐요. 뭘 위해 이렇게까지 이를 악물고 병과 나 자신을 이겨야 하는지, 텅 빈 이유의 껍질을 수없이 깁고 때우셨을까 봐요. 아빠의 시간, 아빠의 기대 따윈 없던 머릿속에 온통 자기만 가득하던 아들이었으니까요.
기어코 힘들다는 말 한 번 안 하셨네요. 그 비바람 속에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았죠. 200원 싼 삼각김밥 좀 먹는 게 뭐 대순가요. 그냥 아빠처럼 살려고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주셨잖아요. 높이도 솟으셨어요. 까마득하네요. 하늘 끝에 걸린 대나무 꼭대기를 보려면 고개가 좀 아프긴 한데, 걸어가야 할 길이 확실해서 좋네요. 해든이에게 전하는 일은 이제 제 몫이겠죠. 너무 과한 미련스러움만 살짝 다듬어서 잘 따라가 볼게요. 이런 게 가풍이란 건가 싶어요. 아빠도 할아버지에게 배우신 것 같고 말이죠? 청청히 이어지고 도도하게 흐르는… 제가 그 강의 작은 줄기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 비어있는 속을 채우는 일은 아직 멀어 보이지만, '퍽 잘하고 있는 건 아닌데, 그럭저럭 뭐 봐줄 만하구나'라고 얘기해 주신다면 좋겠네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해요.
24년 12월 2일
아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