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누르.* 오, 신이시여.
저는 신이 있다 믿습니다. 그래야 세상이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더 간절히 당신이 있다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주 일요일까지 (당신도 아시다시피 오늘은 수요일입니다) 편지 한 통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찾지도 않다 이럴 때만 찾는다고 분노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신이시니 제 모든 걸 알고 계실 테고, 매번 혼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했던 제 헛발질들을 너그러이 참작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
지난 일요일, 가을이에게 쓰는 편지를 마무리하고 기분 좋게 잠에 빠졌습니다. 종종 월요일까지도 작업을 하곤 했는데, 억지로 마감을 앞당긴 건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제 부족한 역량 덕에 퇴고란 것은 끝이 없어, 백 년을 주면 백 년 동안 고칠 게 분명하니 말입니다. 그것 말고도 한 주의 시작부터 가족과 함께 저녁을 보내지 못한다는 것도 신경 쓰였고, 하필 이번 월요일은 해든이의 생일이었기에 어떻게든 일요일까지 끝내야만 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이 되었고 태양과 함께 이번 주는 무슨 편지를 써야 할지, 새로운 고뇌도 찾아왔습니다. 다행히 가을이 편지를 쓰며 얼핏얼핏 다음 편지의 후보로 생각해 놓은 것들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생각은 칭기즈 칸에게 여정의 결과를 이야기하는 마르코 폴로를 모티프 삼아 (예, 당연히 알아차리셨겠지만,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노골적으로 흉내 낸 것입니다), 오래전 혼자 떠났던 긴 여행의 결과를 그 후원자인 엄마에게 보고하는 형식의 연작 편지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생각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여행 첫날 핸드폰을 잃어버려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택시에 두고 내리게 하셨죠) 몇 달 동안 사진 한 장, 잘 다니고 있다는 안부 하나 제대로 전하지 못했고, 마르코 폴로 건, 바스쿠 다 가마 건, 돌아온 탐험자가 후원자에게 기행을 보고하는 일은 의무일 텐데, 여태껏 그 많은 곳에서 뭘 했는지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에피소드라도 정해야 할 것 같아 중국 구이저우성 어디 이름 모를 산속 절에 들어간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어보았습니다. 때마침 저번 주에 첫 시작으로 괜찮아 보이는 문장이 떠올라 메모 해뒀기 때문입니다. <16인승 버스는 하나둘 승객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몇 줄 써보고 이내 깨달았습니다. 이 깊고 강렬했던 경험을 이런 식으로 써서 날리기엔 너무 아쉬울 것 같다. 또다시 잘 쓰고 싶다는 병이 도졌고, 고작 터미널을 묘사하는 단계에서부터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그 기암괴석들과 그사이에 박혀있던 나무들, 습기와 담배 냄새,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90년대에 멈춰있는 듯했던 터미널 건물. 제게 주어진 5일 안에 묘사부터 서사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월요일이 갔습니다. 화요일이 되었습니다. 급히 방향을 선회해 두 번째 후보를 호출했습니다. 숙현이 첫 편지를 쓰며 중간중간 적은 생각들을 살려 하나의 글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편지가 유난히 진지하며 자유롭게 (사실 <지멋대로>겠지만 좋게 표현하겠습니다) 쓰다 보니 너무 많은 변명이 필요했고, 틈틈이 적은 구구절절한 핑계들을 모아보니 꽤 쌓여 글 하나짜리 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평소 지키던 단문 원칙을 어겼는지, 왜 내용은 중구난방이고, 전혀 연애편지 같지 않은 편지가 되었는지, ... 당신은 모든 걸 알고 계실 테지만 말이죠.
늘어놓은 생각들을 뭉텅이로 묶어도 보았습니다. 묶인 덩어리에서 주제를 뽑아 한 줄로 써보기도 했습니다. 생각 덩이들에 흐름도 줘 보고, 구조 속에서 구조를 만드는 법을 연습했습니다. 고민은 생각보다 기쁘고 재밌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마치 정석 바둑을 두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구조니 흐름이니 고심하는 척만 하고 제대로 마주 서 본 적 없었는데, 잠시나마 진짜 글 쓰는 사람이라도 된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더 이상 손댈 게 없는 문구도 두어 개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도입 문단을 썼지만, 문제는 그것이 본래 말하려는 주제와 너무 떨어져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고치고 다시 쓰는 재미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길을 잃든 말든 몸을 맡기고 실컷 내달렸습니다. 전적으로 얼개대로 안 간 저의 잘못이었습니다. 멀찍이 날아가 버린 도입을 잇기 위해 도입의 도입 따위의 문단이 필요해졌고, 두 번째 문단을 쓰기 시작하니 화요일이 갔습니다.
수요일이 되었습니다. D-3 이라는 숫자가 가슴을 누르기 시작했습니다. 추욱 처지는 분위기가 글에까지 뚝뚝 묻어났습니다. 억지 흥이라도 긁어모아 두 번째 문단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멀어지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훑고 갔습니다. 도입의 도입, 두 번째 문단의 주제인 <잘 쓴 편지란 무엇인가>가 적힌 얼개와 깜빡이는 커서를 번갈아 쳐다보며 다시 한참을 썼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 많은 생각 병>이 문을 두드렸습니다. '잘', '객관성' 같은 문단의 중심 개념에 대한 생각이 침잠하진 못할망정 물음표의 고리에 꿰여 끝없이 발산하였습니다. 개념이라는 뿌리를 몇 번 뒤적거리니 한 땀씩 박아 넣은 단어 잎들이 우수수 떨어졌습니다. 이걸 수렴시킬 수 있을까, 걱정은 의심을 만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틀리면 어쩌지, 주장에 대한 확신이 옅어졌습니다. 모이지 못한 생각들에 또 길을 잃었고, 후렌치파이 부스러기 같은 맞물리지 못한 문장들만 남았습니다. 본격적으로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입과 도입의 도입을 쓰다 남은 문장 나부랭이들만 손에 쥔 상황에서, 얼개 상 최소 다섯 문단은 더 써야 할 텐데 3일 남았다 생각하니 머리가 아득해졌습니다. 저는 또다시 결정의 순간에 섰습니다. 지금이라도 한 번 더 선회해야 할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두 번째 생각을 끌고 갈지.
결국 이렇게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당신의 모습 중 하나는 7일 만에 온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던데 (심지어 마지막 날은 티타임을 즐기며 작품을 음미하셨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3일 동안 편지 한 통 못 쓴 초라한 저를 봅니다. <악행은 첫 시작이 어려울 뿐> 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한 번 선회하니 두 번 선회하는 건 일도 아니었습니다. 비실비실 추락하는 경비행기의 꼬리에 흐리멍덩한 구름만 매달려 있습니다.
지나버린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이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 편지를 마무리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남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삶이었더라면! 다음 주 월요일이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기회가 온다는 것, 다시 한번 해볼 수 있다는 것이 이리 감지덕지 한 일이었습니까? 이곳에 와서야 당신이 제게 마련한 은총을 만납니다. 이 징그러운 비행의 끝에도 선물을 놓아둔 당신의 자비심을 적습니다.
25년 2월 12일
중생
so I realised that I was just a person, and I get another shot at it, every day the sun comes up.
- bill murray
*Ya Nour. 이집트의 춤곡에 나오는 사랑의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