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손편지 쓸 때 참고할 문장과 문구

글쓰기가 어렵다고 나한테 편지를 왜 써

으휴. 나에게.


야야야 죽상 좀 펴라. 백날 얼굴 찌그러트려서 뭐. 그러면 좋은 일 생기냐? 있는 일도 다 도망가겠다 인마. 뭐가 그렇게 문제인데.


글을 못 쓰겠어? 벌써 못 쓰겠으면 어떡해. 쓴 지 얼마나 됐다고. 어디 한 번 봐봐. 뭐야, 쓸 얘기 많이 있구만. 그런데 왜. 글로 옮기는 게 어렵다고? 남들 다 쓰고 다 말하는데. 손 있겠다 입도 안 돌아갔겠다. 열심히 치고 소리 내서 읽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쓴 게 한심해 보일까 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럼 무슨 자신감으로 이 되지도 않는 이야기는 쓰고 있는 건데? 오케이. 이건 예외라 치고.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고.


제일 문제가 뭔 것 같아. …… 문제가 범벅이어서 뭘 꼽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럼 아무거나 좋으니까 떠오르는 대로 불러봐봐. 한 문장 쓸 때마다 이게 맞나 싶고. 어떻게 문장을 쓰긴 썼는데, 모아보니 중구난방이고. 시간은 없는데 눈만 저 위에 달린 것 같고. 한심한 글을 쓰게 될까 봐 두렵다고? 좋아. 그 정도면 충분하구만. 나도 가끔 보긴 했어, 너 편지 쓰는 거. 뭔 예수님도 아니고, 세상 고뇌는 네가 다 짊어졌더라. 누가 보면 글을 쓰는 게 아니고 인민재판이라도 하는 줄 알겠더라고. 너 자신한테 던져서 그런가, 돌팔매질도 잘하던데?


편지 쓴 것도 몇 개 읽어 봤는데, 난장판이긴 하더라. 그래서 내가 찬찬히 생각해 봤거든? 내가 딱 정해줄게. 네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즐거움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법>이야. 생각을 문장에 못 옮기는 것도 문제고. 기껏 옮겨 봐야 따로 노는 것도 문제긴 한데. 저거 해결 안 되면 어차피 다 안 돼. 지금 너를 봐봐. 어때. 언제 이렇게 불꽃이 사그라들었지? 이건 매너리즘이 아냐. 매일 스스로에게 찬물을 끼얹고 있는 거지. 월요일이면 얼굴 하얘져갖고 글쓰기가 두려워서 징징대는 모습 좀 봐. 오래 해야 할 것 같다며. 신이 나야 오래 할 거 아냐. 지금 너는 신나게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


뭐, 자신감이 과하면 나중에 조금 창피할 수도 있어. 이런 편지가 박제되었다고 생각해 봐. 오, 끔찍하긴 하다. 내려놓고 쓰면 너야 재밌겠지. 그런데 너도 알잖아. 비판 없는 창작, 그건 널 지옥으로 이끄는 안온한 내리막길이니.* 경사도 완만하니 걷기도 쉽고. 갈랫길에 이정표에 표지판도 없는. 그저 알량한 네 결과물에 취해서, 그 모습 그대로 주욱 미끄러지다가. 싸부랑질 끝에 타성의 철퇴를 맞는 거지. 그제야 뒤를 돌아보면, 남은 건 하나같이 발전 없는 결과물뿐. 허섭스레기들만 손에 쥔 모습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진다. 선조들이 괜히 말했겠어? 창작은 쉽지 않아야 한다고. There is nothing to writing. All you do is sit down at a typewriter and bleed. 글쓰기는 별거 없다. 네가 해야 할 건 타자기 앞에 앉아 피를 흘리는 일뿐이다. 헤밍웨이도 피 좀 토했다는데. 고작 실없는 글자 나부랭이나 흘리는 게 네가 즐거워하는 일이었어?


그래서. 기대치가 높은 건 좋아. 지푸라기로 집을 지은 아기 돼지가 어떻게 됐더라? 너울은 모든 걸 휩쓸고 지나 갈거야. 잘 들어. 네가 너 자신으로 남을 수 있게 지켜줄 건, 돌덩이 하나씩 옮겨 쌓을 벽 뿐이야. 다만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그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 너무 원시인 같다는 거지. 무작정 높여 놓고 안 된다고 징징거려 봐야 벽이 뭐 저절로 쌓이냐. 즐거움은 감정이고 일시적이지. 내일이면 기억도 안 날 걸. 네가 만들어야 할 건 구조야. 즐거움 낱개가 아니고 즐거움이 계속 흘러, 쿨한 글에 닿을 수 있는 구조.


'와, 내가 봐도 오졌다.' 문장 부스러기들에 취하는 것도 즐거움이긴 해. 네가 지금 손에 쥔 유일한 연장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거 몇 개나 기억나?  벌써 다 까먹었잖아. 그때만큼은 짱돌이 아니고 박수 소리가 쏟아졌는데. 문제는 그거야, 금방 날아가 버린다는 것. 뗏목은 눈앞의 섬에는 갈 수 있어도 대양을 건널 수는 없어. 섬을 쫓다 보면 대양을 건넌다고 하지만, 섬이 보이지 않는 날에는 갤리온이 필요해. 어두운 밤의 바다를 꿰뚫어야 하니까.


쉬이 얻은 건 쉬이 사라진다. 고난, 투쟁, 노력은 결말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즐거움도 있대. 긴 시간 속에 일렁이던 괴로움, 고통, 고뇌 그 모든 것들이 커피 프림처럼 녹은 즐거움. 이해되냐? 난 안 돼. 느껴본 적도 없는데 가슴에 닿을 리가 있겠어. 그런데 그렇대. 거기까지 가고, 긴 벽을 쌓은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짧은 즐거움이 있으면 긴 즐거움도 하나 해두는 거지.


즐거움을 뭉뚱그리지 마. 즐거움은 네가 쪼갠 만큼 얼굴을 가질 테니까. 브라흐마**처럼 한 네 개 정도 만들어놓으면 충분하지 않겠어? 이 즐거움이 다 탔다 싶으면 저 즐거움 태우고. 금방 잊어먹고 또 채워질 테니까, 하나 다 탔다고 짜고만 있지 말고. 지레 겁먹고 불씨 끄지 말라고. 저번 주는 편지의 신 찾더니 이주 연속 이러고 있는 걸 보니 알만하다. 잘 좀 해 봐. 알았지?


25년 2월 19일

오늘도 널 지켜보는 내가


*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슬쩍 베껴 씀
** 힌두교에서 창조를 관장하는 신으로 4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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