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엄마.
예, 오래 기다리셨네요. 참 살갑지 못한 아들이었죠.
잘하고 있냐 물어봐도 맨날 알아서 잘하고 있다고. 부모란 것이 그렇듯, 품에서 떠나가는 자식이 어떻게 지내는지 여전히 궁금했을 텐데. 시시콜콜 자기 이야기도 하고 고민거리도 털어놓는 그런 아들은 아니었으니. 아들이란 다 그런 건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아들놈 키워봐야 하나도 소용없다며 농담 덮인 하소연도 해보고. 어느 날은 얘기도 좀 하자며 저녁을 먹다 마음 먹고 입술을 떼었을 텐데. <그럭저럭, 그냥 그렇지 뭐.> 매번 다를 것도 없는, 건더기 하나 없는 맹탕 같은 대답에 빈 마음을 지우지 못하는 날들이며.
노는 무리에 어울려 밤낮이 바뀌고, 만 원짜리 열 장 주면 열흘도 안 돼 다 쓰고, 금방 더 달라고 강짜나 놓는 아들은 아니었지만. 빨간색 중고 오토바이 대신 구청에서 빌린 바구니 자전거를 탔을 뿐. 밤에는 어딜 그리 쏘다니는지 저녁만 되면 길거리로 나갔다가. 동이 튼 아침에 들어오면 얼굴이라도 마주칠까. 껌껌한 새벽 살그머니 들어와 얼른 이불 뒤집어쓰고 자는 척하고. 다른 건 아무 얘기 안 했어도 츄리닝 호주머니서 담뱃갑이 나올 때면 담배 좀 끊으라고 몇 번을 얘기했건만, 결국 숙현이 만나기 전까지 담배도 달고 다녔던. 그 밤거리 혼자 담배나 꼬나 피고 길을 헤던 시간들이 뭐 그리 중요했는지.
어느 날은 쪽지 하나 남겨놓고 남쪽으로 걸어가 볼 거라고. 핸드폰은 두고 가지만 따로 걱정은 하지 말라고 쪼리 찍찍 끌고 집을 나가버리고. 수원이나 되었던가요. 공중전화로 수신자부담 전화를 걸어 잘 있으니 걱정말라고. 구르고 싶은 만큼 길바닥을 구르다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훌렁 집에 돌아오고.
자기 뒤에 누가 있는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저지르는 일들이 유리알을 어디로 미는지. 내던지는 일 뒤는 안 돌아봐도 엄마는 한 번쯤 돌아볼 수 있었을 텐데. 책임 하나 안 졌으면서 뭘 그리 경주마처럼 텅 빈 거리를 내달렸는지. 누군가를 위하려, 오늘도 어김없이, 다들 어디론가 떠난 정오의 빈 거실을 마주하는 대신 아침 식탁에 한 번이라도 더 앉았더라면. 남겨져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모습인지 잘 다녀왔다고 말이나 한마디 했었더라면.
알아서 잘하겠거니—만 하고. 뭐 그리 오래 기다려주셨어요. 숙현이와 데이트하던 시절 일찍부터 강변역 버스 정류장에 가서는. 타고 내리는 사람 가득한 차창 속에 그 얼굴이 있나 없나. 주욱 목을 빼고 바라보던 일 말곤, 기다림이란 뭘까 생각 한 번 안 했던 저였는데. 해든이와 가을이를 만나서야 그 부모란 게 뭔지, 하염없는 기다림이라는 게 어떤 모양인지. 이제야 한 입 베어 물어보네요.
해든이도 이제 다 커 별것도 아닌 일에 삐지기도 하고. 심술이 나면 토라져서는 아빠 저리가, 라고도 하고. 막상 그 조그만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려서. 그게 토라질 일인지, 삐질 일도 아닌데, 입술만 뭉실거리다가. 그건 내 생각이겠지. 그럼 아빠 나가 있을 테니까 해든이 마음 괜찮아지면 우리 다시 같이 놀자, 하고는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빼꼼 보면. 하마 베개를 끌어안은 채 카펫 위에 뾰로통이 앉아 있다가 애꿎은 카펫 실밥이나 몇 번 만지작거리고는 이내 괜찮아졌다고 안아달라고. 그럼 우리 약과 하나 먹고 또 재밌게 놀까, 하면 금세 기분 좋아져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살갑게 안아주네요. 고맙죠. 엄마는 몇십 년을 기다렸는데 고작 오 분짜리 기다림이라니.
언제는 소방차 건전지 끼우는 걸 자기가 하겠다고. 끼워주면 금방이지만 굳이 또 하겠다길래. 건전지 평평한 면을 검지 끝에 비벼주며 여기를 띵요띵요하는 곳에 대고 뽈록 튀어나온 곳을 누르면 된다고. 전에 몇 번 알려줬으니 잘하려나, 옜다 하고 줘 보니. 대는 건 곧잘 하더니만 누르는 건 여전히 어려웠는지 두어 번 해보다 안 된다고. 진득이 해봤으면 좋으련만. 이내 찡찡이가 된 해든이에게 떠밀려 건전지를 끼우다 보면 어느새 이런저런 기대를 하고 있는 저를 봐요.
이건 이렇게 해줬으면, 이건 이러지 말지. 사람이라는 게 서로에게 기대하고, 어느 날은 기쁘고 어떤 날은 실망하며 사는 거라지만. 오늘에서야 또렷이 느껴요. 지금이야 잠시 실망스러운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고불고불, 정류장을 향해 날아오는 너의 모든 날갯짓임을. 내가 기다리는 한 너는 나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내가 먼저 떠나지 않기만 하면 되는 일임을. 부모란 기다리는 사람이란 것임을, 기다리는 일이란 끝내 널 믿는다는 일임을.
이 깊은 밤 제가 바라는 게 있다면, 엄마의 그 긴 시간이 하염없는 기다림으로만 가득하지 않았길 하는 것뿐이에요. 주홍빛으로 물들었던 남구로의 밤거리와, 1번 국도 위로 쏟아지던 덤프트럭의 먼지바람과, 골방, 먼 이국, 담배 연기, 겨울 입김, 헤고, 또 헤던. 이제는 아스라이 멀어져 버린 그 시간을 지나 여기 정류장에 오는 길 그동안. 때로는 기쁨이, 어떤 날은 뿌듯함이 있었길, 오늘은 그 가슴에 따수운 봄물이 스며들길.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서면. 아파트 꼭대기 1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래 놀이터와, 그 옆으로 높이 솟은 시계탑과, 우거진 등나무 아래 놓인 노란 평상과, 민들레, 개망초, 토끼풀, 바스락대는 잎들 사이로 들꽃 무성한 화단을 지나 아파트 정문을 나갈 때까지. 엄마는 베란다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정문을 나서면 수박색 기와를 머리에 얹은 연녹색 담이 늘어서 있었는데, 정문 기둥과 아파트 옆 교회 건물 사이로 작은 틈이 하나 있었고, 그 틈을 지나면 더 이상 집이 보이지 않아 늘 그 틈 앞에 서서 집을 쳐다보았죠. 그때마다 열린 창문으로 여전히 손을 흔들던 엄마를 볼 때마다 얼마나 좋던지. 제 모든 기다림은 거기서 시작되었어요.
25년 3월 7일
조금 멀리 돌아와 버린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