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지인에게 손편지 쓸 때 참고할 문장과 문구

먼 이국의 처남댁에게

사랑하는 유나에게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위니펙에 폭염 경보가 발령되었군요. 화요일은 35°C/11°C라는데, 제 눈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요. 왜냐하면 같은 주 토요일의 기온은 3°C/-1°C라고 쓰여있기 때문입니다. 위니펙은 대체 어떤 곳일까요. 잘 지내고 계십니까? 편지를 쓰려 잠깐 날씨를 봤는데, 이상한 나라의 토끼 굴에 발이 채인 기분입니다.

이곳은 아직 봄이 살랑거리고 있습니다. 분분히 떨어지는 봄의 꽁무니를 잡아보겠다고 연재 펑크도 몇 번 내고, 기쁨과 부끄러움으로 물든 날들을 보내는 중입니다.

지나의 결혼식이 이맘때쯤이더군요. 따스함으로 부서지던 김해의 햇살이 떠오릅니다. 하필 그 여행만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어서 그랬을까요. 손끝을 스치는 추억은 모두 아련하니 잘잘이 빛들이 번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얼굴 본 게 벌써 일 년 전이라니, 시간은 어느새 훌쩍 흘러버렸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부모가 되었습니다. 저는 두 아들놈의 아빠가 되었고(경력직이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건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유나, 태현, 두 분은 마침내 자두처럼 달고 피처럼 붉은 생의 한가운데에 들어섰습니다. 매일이 처음이자 매 순간이 마지막인 곳, 환희와 책임이 열대의 저녁처럼 뒤섞여 타오르는 곳…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다른 어떤 단어도 들어있지 않은, 오직 이 말을 먼저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합니다. 출생증명서 떼듯 부모라는 자격도 종이 몇 장에 출력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미 있는 일이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떠올릴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잠시 차에서 내려 스트레칭도 한 번 하고, 살포시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세상의 빛이 위니를 흠뻑 적시는 날, 세 사람을 태운 차는 당분간 휴게소 하나 없는 고속도로 위를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속도로는 평원을 가로질러 시선의 끝까지 곧게 뻗어 있습니다. 그곳은 낮도 밤도 없는, 태양이 지지 않는 땅입니다. 이글거리는 대지 한가운데 눈부시게 보드라운 생이 피어나 있습니다. 그의 눈웃음 하나에 들판과 언덕은 하얗고 노란 국화로 뒤덮일 것입니다. 그의 울음소리는 지평선 가득 유성우를 쏟아져 내리게 할 것입니다. 오래전 사그라든 별들도 불을 다시 밝히고 그를 내려다봅니다. 온 세상이 그를 중심으로 공전하기 시작합니다.

몇 달 뒤면 우리는 같은 풍경을 보고 있겠죠. 개구쟁이 한 놈, 갓난아기 한 놈 데리고 먼저 가 있겠습니다. 넷이 된 저희 차는 더 시끌벅적할 것 같습니다. 아들놈 하나만 해도 총천연색 에너지가 차창에 흘러넘치는데, 둘이라니. 이렇게라도 저의 체력을 길러주려는 신의 뜻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아볼 때쯤이면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위니의 성별을 전해 들으셨을지도 모르겠군요. 이곳은 누구나 알 수 있을 법한 비밀 암호로 슬며시 알려주던데, 그곳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아들이건 딸이건 튼튼한 체력은 필수지만, 혹여 아들 녀석이라면 건강 관리에 보다 만전을 기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옆 동 딸내미는 어린이집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직행해 저녁 먹을 때까지 상에 앉아 사부작사부작 논다던데, 해든이는 단 한 번도 <오늘은 일찍 집에 갈래>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또한 조심하십시오. 이 녀석들은 놀아줄수록 체력이 자라는 친구들입니다. 이제 완만한 내리막길만 남은 저희의 체력을 붙잡아줄 끈이 될 수 있지만서도…

숙현이는 이제 배가 꽤 나왔습니다. 둘째는 배가 더 나온다는 말이 사실이더군요. 앉았다 일어섰다 뒤척일 때마다 추임새를 넣는 모습이 영락없는 만삭 임산부입니다. 그래도 나름 경력직이라고, 똥그란 배를 안고 요리조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고 해야 할지.

생각해 보니 저번 통화에서 우리는 얼굴만 보았더군요. 곧 유나도 <어느 쪽으로 누워서 자는 게 더 편한가> 라든지, <귀가 먹먹해지는 걸 완화하는 방법> 같은 걸 고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물어보세요. 저희의 삽질이 위니의 안락한 주거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영광일 겁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체력과 텀블러 가득 채운 디카페인 커피, 그리고 유모차 설명서를 세 번 읽고도 왜 접히지 않는지를 견뎌내는 약간의 인내심뿐입니다. 언제쯤 밥 한 끼 다시 먹을 수 있을지 아무런 기약도 없지만, 그렇기에 편지를 써봅니다. 분유처럼 알맞은 온도의 사랑과 여유가 세 분에게 깃들기를 바랍니다.

25년 5월 13일

만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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