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쓸 때 참고할 문장과 문구

애프터 신청의 답장이 늦어진 일에 대해 품위있게 변명하는 방법

애프터 신청에 대한 답장은 다음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로 귀결된다. 1초 만에 <좋아요!>를 보내는 경우, 두어 시간쯤 지나 <아무개 씨는 좋은 분이지만 인연이 운운…>하는 경우, 그리고 아무 말도 없는 경우. 이 중 문제가 되는 건 단연 마지막이다.

답장은 원래 느린 것이다. 중세의 사랑은 대개 전령의 말발굽 상태(주정뱅이 대장장이의 발굽이 걸리면 한참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나, 시장 골목과 성벽 틈을 꿰고 있던 하녀의 머릿속 비밀 지도에 달려 있었다. 그녀는 성문 대신 대장간 옆 개울가로 빠졌고, 빵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덕을 지나 보리수나무 뒤에서 서찰을 전해 받았다. 그렇게 전달된 서찰은 정원의 장미 덤불 아래 숨겨졌다가, 구름이 초승달을 가리는 틈을 타 몰래 침실로 들어오곤 했다.

이제 보리수나무 자리에는 채팅방이 들어섰고 말발굽 대신 광섬유가 스물네 시간 대기 중이다. 그리하여 답장은 더 이상 느린 것이 아니라 늦은 것이 되었다.

현대 사회는 늦게 보냈다는 사실보다 왜 늦었는지 말하지 않는 것을 더 무례하게 여긴다. 덕분에 이제 늦은 답장에는 이유가 필요하다. <늦어서 미안합니다>로는 부족하고 <요즘 너무 바빴어요>는 진부하다. <사실 메시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어떻게 답장을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었어요>, 이 정도 서사는 제출해야 수신자는 ‘충분히 합리적이군’이라며 당신의 변명을 승인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합리적’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수신자의 마음속에서 소집된 심의위원회의 기준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지연된 답장의 납득 가능성 검토 양식 제22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응답의 작성을 위해 참고할 만한 모범 유형 세 가지를 소개한다.

※ 단, 검토 결과는 당일 심의 상황에 따라 상당히 가변적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유형 1 - 브라질 노동자 및 유튜브 알고리즘과 답장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모든 답장에는 보낼 수 있는 상태라는 게 있다. 이를테면 시간은 가장 푸른 햇빛이 찬란히 내리쬐는 오전 11시 정도가 이상적이다. 장소는 평소 생활 반경에서 조금 떨어진, 자주 갈 일이 없는 커피숍이면 좋고, 회전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연녹색 타일이 잘게 깔린 선큰 정원까지 있는 곳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음료는 아이스 오렌지 비앙코가 어울린다. 적당한 데시벨의 스무드 재즈곡은 본격적으로 답장을 작성하기에 앞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답장을 보내고 난 뒤 그의 회신을 받아야 하므로 핸드폰 배터리는 90%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야 하며, 때문에 핸드폰 대신 바라볼 창밖에는 조경용 화초나 잎사귀가 약 2cm 내외로 흔들리고 있어야 한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부합하는 날이 언제 올 지 누가 알 수 있으랴. 평일에는 화창하다 주말만 되면 날이 흐려진다거나, 브라질 노동자의 갑작스러운 파업으로 인해 오렌지 비앙코가 품절되었다거나, 그날따라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는 최신 유행곡들만 틀어대는 식이다. 걸어오며 떠올린 승낙 멘트는 수십 개지만 단 한 글자도 보내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유형 2 - 오리엔트 특급 회신 실종 사건)

한 명은 답장을 보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명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수신자는 10분 간격으로 대화창을 열어 보았으며, 알림 설정도 ‘모든 메시지’로 되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발신자의 주장 또한 구체적이다. 사건 발생 시각인 오전 11시 36분, 그는 카페 왼쪽 두 번째 창가 자리에 앉아 답장을 썼다고 진술했다. 문장 P는 감정이 지나쳐 삭제했지만, 표현 Q는 네루다의 시만큼이나 감동적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이 답장을 받고도 기뻐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와의 사랑은 처음부터 틀렸던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마지막 문장 뒤에 넣을 이모지를 선택하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며 고민한 시간은 약 4분가량이었으며, 그동안 리나 케티의 J’attendrai가 흘러나왔다는 점을 발신자는 덧붙였다.

의심스러운 점은 수상하리만큼 깨끗한 발신자의 핸드폰 액정이었다. 그의 진술대로라면 다수의 지문이 묻어있어야 했지만, 이모지를 고르느라 4분을 스크롤 했다는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말끔한 상태였다. 메시지 입력란은 비어 있었고, 마지막으로 사용된 앱 또한 날씨였다. 심지어 맞춤법 자동 완성 기능조차 한 번도 실행된 기록이 없었다.

푸아로의 수첩에 기록된 마지막 메모를 이곳에 옮겨 적는다. <여든네 번의 수정, 지나칠 만큼 상세한 상황 진술, 감정의 과잉으로 인한 실제 행동과 기억 간 불일치? 용의자 S, 내면 완결형 응답 시뮬레이션 증후군 의심>

(유형 3 - 대나무 향이 밴 구닥다리 편지)

삼가 아룁니다.

본디 답장이란 빠를수록 가볍고 느릴수록 무거운 법이라 배운바, 소생, 이 지체 또한 정회情懷의 무게를 더함이라 여겨 주시기를 청하옵니다. 날로 치면 사흘이 흘렀고, 마음으로는 여든네 번을 고쳐 쓴 듯하옵니다. 초일에는 하늘이 흐려 붓을 들지 못하였고, 이튿날에는 오렌지가 동나 차마 잉크를 내지 못하였으며, 삼 일째에야 뜻을 전하였다 믿었으나, 이내 소생의 심중에 맺힌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사옵니다. 급한 것만이 미덕이 되어버린 이 속세의 기슭을 거닐며, 완완한 답서 안에 깃든 곡절을 헤아려 주시길 감히 바라옵나이다.

아울러 마지막으로 전하고픈 바,
소생은, 좋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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