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을 쓴 추상적인 얼굴이 그려진 영국 우표가 흰 종이에 붙어 있음.

따듯한 환대

이름 모를 구독자님께,

어쩌면 잠깐의 호기심에 이곳에 들어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회전초 같은 편지들이 구독자님의 마음에 들었을지도요. 이유야 어떻든, 이렇게 인사를 전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안녕하십니까, 로만덕입니다.

저는 <로레터>라는 작은 편지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파는 물건은 없지만, 기분이라도 내볼 겸 회사라 부르고 있습니다. 하는 일은 편지 쓰기입니다. 마음은 이따시만한데, 종이에 옮기기만 하면 형편없어진다는 게 문제지만요.

두 해 전, 첫 편지를 썼습니다. 너를 떠올리는 정원 위로 하롱하롱 떨어지는 햇살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해든이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 통만 쓰면 정 없으니까 한 통 더 쓰고, 형한테만 썼다고 섭섭해할지도 모르니까 해랑이에게도 쓰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내인데 안 쓸 수 없으니 다시 노트북을 켜고…

밍밍하게 식어버린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마다 생각했지만, 쓴다는 건 고난이더군요. 마음은 이미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인데, 검은 화면에 쏟아지는 거라곤 인스타그램 협찬 후기에서나 보일 법한 문장들이었으니까요.

그렇게 다시 쓸 수도, 버릴 수도 없게 된 문장들이 그리움의 밀푀유를 만들 즈음, 제가 진짜로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 단 하나뿐인 말로 그를 사랑하는 일 말이죠.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몇 번이나 봤다고 이 편지가 구독자님을 향한 사랑의 프러포즈는 될 수 없겠습니다만, 산더미처럼 쌓인 문장들을 보고 있자니 썸 정돈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혼자 타는 썸 말이죠.

삐까뻔쩍한 브랜드들처럼 일요일마다 찾아뵙겠다느니, 절대 놓치면 안 될 할인 정보 같은 건 아무래도 힘들 듯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 편지가 메일함 맨 아래서 먼지를 뒤집어쓸 즈음 “내가 이런 것도 구독했었나” 싶은 제목의 편지를 다시 보내드리는 것뿐이겠죠.

단 한 사람을 위한 말을 믿습니다. 언젠가 구독자님을 알게 되어, 당신만을 위한 편지를 쓰는 날을 떠올립니다. 그때까지, 이 가느다란 편지가 저희를 이어주는 다정한 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독자님의 정원에도 여유가 깃들길 바라며,

로만덕 드림.

해변 모래사장에 수영장 구명요원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강가에서 휴식하는 모습.한 장의 종이에 손글씨로 긴 편지가 쓰여 있으며, 상단에는 빨간색과 파란색 배경에 왕관 쓴 얼굴 그림의 우표가 붙어 있다.오렌지 수영모를 쓴 라이프가드가 하얀 관람대에서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왕관을 쓴 얼굴이 그려진 영국 우표가 손글씨 편지 위에 놓여 있다.손글씨로 쓴 한국어 편지와 하단에 새 한 마리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흰색 만년필과 왕 그림이 있는 우표가 붙은 흰 봉투 위에 놓여 있고, 봉투 아래쪽에 한글로 손글씨가 쓰여 있음.
파란색 필기체로 작성된 'lolettern' 텍스트 로고.